본문 바로가기
JS 매거진

밀정 뜻 밀정 찾기

by 지식웰니스2 2024. 8. 18.
반응형

일제강점기 역사를 둘러싼 뉴라이트와의 대립으로 온 나라가 시끄럽습니다. 광복회장이 용산 밀정을 언급했죠. 친일 주장이 공공연하게 이어지면서 진짜 일본 밀정이 있다는 주장도 힘을 얻고 있어요. 밀정의 뿌리를 찾아서 같이 떠나볼까요?
 

밀정(密偵)을 찾아서

 
 
 

목차

     
     

    1. 밀정, 찾기가 힘들다.

     
    1.1 밀정(密偵) 뜻
     
    밀정은 우리 독립운동 진영의 치명적 정보를 일제에 은밀히 빼돌린 사람을 뜻합니다. 일제강점기 일본 기관들이 작성한 정보 보고서는 대부분 밀정의 보고로 만들어졌다고 합니다.

     

     
    1.2 밀정, 자료가 없다?
     
    밀정을 금세 찾을 줄 알았는데 체계적으로 정리한 자료가 거의 없어서 갸우뚱했어요. 블로그 글을 500편 이상 쓰면서 인터넷에 정리된 자료가 없는 키워드는 처음이네요.
     
    지식백과, 위키백과 다 뒤져도 밀정 자료는 몇 줄 없고 밀정 영화나 간첩 자료만 있네요.
     


    1.3 체계적인 자료가 부족한 이유
     
    학계와 언론계 모두 밀정에 대한 심도 있는 탐구는 사실상 없었다고 해요. 국내 자료가 별로 없고, 예산과 인력도 부족해서 어두운 역사를 파헤치기가 힘들어서라고 합니다.
     
    밀정 다큐멘터리에도 체계적인 밀정 자료가 부족한 이유가 언급되죠. 가명을 써서 흔적을 잘 남기지 않았고 일제가 패망하자 모두 사라졌다고 합니다.
     
    밀정으로 의심되지만 입증하기 힘든 경우도 많다고 합니다. 입증할 수 있는 자료는 아이러니하게도 밀정의 보고를 받았던 일본이 가지고 있죠.
     

     

    2. ‘KBS 시사기획 창 - 밀정’

     
    그러다가 유튜브에서 ‘KBS 시사기획 창 - 밀정’ 자료를 찾았어요.
     

    이하 자료원 ; KBS 시사기획 창 - 밀정
     

    • 타이틀: ‘KBS 시사기획 창 - 밀정’ (2부작 다큐멘터리)
    • 방송: 2019.8/13 1부 - ‘배신의 기록’(53분)
    • 2019.8/20 2부 - '임시정부를 파괴하라'(52분)
    • 기획: 3·1운동과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 기획
    • 제작: KBS 탐사보도부
    • 개요: 8개월 동안 한국인 밀정을 추적. 일본 외무성·방위성·헌정자료실, 중국 공문서 등 기밀문서 5만 장을 입수. 밀정 혐의가 짙은 한국인 895명 실명공개.

     


    밀정에 대해 진정한 문제의식을 갖고 열심히 탐사한 프로그램입니다. 밀정에 대해 폭넓게 조망하고 있죠. 기미가요를 트는 지금 KBS와는 차원이 달라요.
     
    사실 5년전에는 못 봤어요. 이번 기회에 제대로 볼까 합니다. KBS 밀정을 토대로 밀정을 찾아 떠납니다.
     

     

    3. KBS 밀정 1부 - ‘배신의 기록’

     
    1부 '배신의 기록'에서는 김좌진의 최측근이었던 독립군 이정과, 안중근 의사의 이토 히로부미 암살 동지였던 우덕순의 배신을 집중적으로 조명했어요.
     
    3.1 김좌진 장군 최측근 이정의 배신
     
    이정은 김좌진 장군과 함께 1920년 청산리전투를 수행한 독립군 대원으로서 김좌진의 막빈(비서)을 맡은 최측근이었어요.
     


    그러나 독립군 간부들의 용모와 특징, 김좌진과 김원봉의 향후 합동 의거 계획, 군자금 모금 상황 등에 대해 매우 세세하게 일제에 밀고했어요. 일본 외무성 기밀문서에서 기밀 보고서 57장을 확인했어요.

    김좌진 장군, 이장녕, 이범석 선생 등 독립군 간부들의 인상착의와 특징, 특기와 외모, 직책까지 일목요연하게 정리돼 있어요. 군자금 모금 과정과 독립군의 향후 계획 등 내부 기밀 정보까지 대한독립군단의 모든 것을 밀고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에요.

    이정은 독립군의 군자금을 모집하던 이홍래 선생도 밀고했고 이홍래는 밀고 한 달 후 체포돼요. 국립서울현충원에는 밀고자 이정과 붙잡힌 이홍래의 위패가 나란히 있어요.

     


    3.2 우덕순의 변절
     
    우덕순은 1909년 안중근 의사가 중국 하얼빈 역에서 이토 히로부미를 처단할 때 함께 했어요. 만일에 대비해 채가구역에서 이토를 기다렸죠.
     
    그러나 1925년 일본의 자금을 지원받고 일본의 지시로 운영되는 조선인민회 하얼빈지부의 회장으로 일제의 밀정으로 활동했어요.
     


    밀정으로 많은 독립군을 일제에 밀고하였으나 1962년 건국훈장 독립장을 받았고 현재까지 국립서울현충원에 그의 묘지가 있어요.
     
    국가보훈부는 우덕순의 반민족적인 밀정활동이 일본 외무성의 자료로 확인되었음에도 건국훈장 독립장을 취소하거나 묘지 이장을 하지 않고 있어요.
     


    3.3 밀정 혐의자 895명 명단 공개
     

     
    탐사보도부가 찾아낸 밀정 혐의자만 895명에 달했는데요.그들의 실명도 공개했습니다. 일본과 중국 기밀문서를 장기간 분석한 결과예요.

    밀정 가운데에는 안중근 의사의 동지, 김좌진 장군의 비서, 의열단장 김원봉의 부하 등 현재 독립유공자로 분류돼 있는 사람들도 있었어요.
     
    밀정 1부 방송과 함께 KBS 9시 뉴스에서도 일제강점기 한국인 밀정을 찾아내서 그들의 행적을 보도했다고 합니다.
     

     

    4. KBS 밀정 2부 - '임시정부를 파괴하라'

     
    '2부-임시정부를 파괴하라'(52분)에서는 일제의 임시정부 파괴공작과, 김구, 김원봉, 홍범도 주변의 밀정을 짚어봅니다.
     

     
    일제는 임시정부가 수립되자 밀정을 동원해 집요하게 임정 붕괴 작전에 돌입합니다. 일제가 어떻게 독립운동가를 밀정으로 포섭했고 그런 밀정들이 얼마나 임정 깊숙이 침투해 있었는지 밀정 2부에 자세히 나와요.

     

     
    4.1 임시정부 파괴 공작
     
    1919년 상해 임시정부가 수립되자 일제는 특단의 조치를 내립니다. 독립운동가를 밀정으로 포섭해 임시정부를 내부로부터 무너뜨리기로 했어요. 그 중심에는 우쓰노미야 다로 조선군 사령관이 있었어요.

    우쓰노미야는 당시 독립운동의 토대를 마련한 것으로 평가받던 범재 김규흥을 포섭해요. 김규흥에게 임시정부를 파괴하라는 밀명을 내립니다.

     


    KBS는 김규흥이 우쓰노미야에 보낸 편지 내용을 확인했습니다. 김규흥의 친필 편지로, 한국에 공개되는 건 처음입니다.
     

     
    우쓰노미야 사령관 각하에게.

    "상해임시정부는 200명이었으나 대부분 귀국하고, 현재 남은 사람은 60명입니다. 이중 극렬분자는 40명에 이릅니다. 이들을 회유하기 위해선 20~30만 엔이 필요합니다."

    "김달하와 함께 각지의 독립운동가들을 북경에 모아서 조선으로 돌아가려는 계책을 갖고 있습니다. 활동비로 김달하에게는 3만 엔, 저에게도 2만 엔을 주시길 바랍니다."

     


    김규흥의 친일 논란이 있었지만, 구체적인 밀정 의심 행적이 처음 밝혀진 겁니다.

    [배경한/부산대 한국민족문화연구소 교수 : "경악스러웠죠. 이걸 어떻게 이해해야 되나. 연구자들의 연구를 기다려야 되지, 조급하게 이쪽이냐 저쪽이냐 이렇게 판단하는 것은 무리가 있고.."]
     
    김규흥은 1998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받았습니다.
     


    4.2 김구 암살 시도
     
    상해 일본 총영사관은 끊임없이 밀정을 생산해 내는 밀정 공장이었습니다.

    [쑨커즈/중국 푸단대 사학과 교수 : "이곳은(일본총영사관) 당시 한국인들의 독립운동을 저지하기 위한 지휘소였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집요하게 임정 내부에 밀정을 침투시켰고 김구 선생의 경호원까지 밀정으로 포섭했습니다. 세 차례에 걸쳤던 김구 암살 시도 등 모든 공작에 일제는 밀정을 동원했어요.

    [한시준/단국대 사학과 교수 : "김구 선생은 심장 있는 데 관통을 당하고, 독립운동에 몸담고 있는 사람들이 매수돼서 저격을 하게 됐다."]

     

     
    4.3 김원봉과 의열단 기밀 누출
     
    김원봉은 의열단을 조직해 항일 무장투쟁에 앞장선 인물이죠. 1926년 작성된 일본 기밀문서에는 김원봉과 의열단에 대해 자세히 적혀있어요.
     
    "의열단 단장 김원봉과 함께 한구로 왔고, 김원봉은 북경을 거쳐 광둥으로 향했다."면서 "상해 프랑스 조계 31공학에서 의열단 총회가 개최될 것이고 참석자는 40~50명이다"라고 적혀있어요.
     


    사무실 위치는 물론 행적 하나하나 철저히 비밀이었던 의열단의 내부 정보가 밀정에 의해 누출됐어요.
    문서에 적힌 밀고자는 의열단원 김호 (본명 김재영)으로 의열단과 청년동맹회에 참여한 공로로 건국훈장 애족장을 받았어요.

     

    김원봉 선생의 후손은 의열단 동지가 밀정이었다는 사실에 크게 놀랐죠.


    [김태영/김원봉 선생 후손: "굉장히 놀랐어요. 밀정이라는 게 사람으로서 할 수 없는 그런 짓인데 기막힌 일이죠, 말이 안 되는 얘기죠."]

     

     
    4.4 홍범도를 밀고한 부하
     
    홍범도 장군은 봉오동 전투가 있기 10년 전부터 지속적인 감시에 시달려야 했습니다. 1912년 작성된 일본 기밀문서에 밀정이 된 홍범도의 부하가 밀고한 내용입니다.


    "홍범도는 러시아 말을 타고 있다. 완장에는 붉은색 선 두 줄이 둘러져 있고, 견장은 청색이며 '통령감'이라고 적혀있다."

    "홍범도가 사는 곳은 혜산진 대안 일리에서 약 30리 떨어진 신약수동이다."

     

    한국에 은밀히 파견된 홍범도 부하들의 구체적인 신상정보까지 낱낱이 담겨있습니다.

     

     


    KBS 밀정 1,2부를 보고 밀정에 대해 많이 알게 되었어요. 밀정은 독립운동을 와해시키려는 일제의 핵심 전략이었죠. 김구, 김좌진, 홍범도 등 주요 인사의 측근까지 밀정으로 만들었죠. 이토록 집요했던 일본이 밀정 만들기를 중단했을까요? 밀정은 사라졌을까요? 먼 훗날 밀정 3,4부가 만들어지지 않는다고 장담할 수 있을까요?

    반응형